
화창한 날씨
엊그제의 비는 거짓말 같다
날씨가 그래도 생각만큼 덥지는 않았다

해오름극장 객석 1층 = 로비 = 건물 2층
사진에서 느껴지듯 굉장히 넓다
로비가 참 넓은 나머지 한 구석에 40석짜리 카페도 있었다
부동산이며 직방에 포진한 사기꾼들은
광각렌즈를 가지고서 사진으로 사기를 치지만
이곳 해오름극장 로비는 기본렌즈로도 세렝게티급 넓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캐스팅보드도 찍었다
사실 렛미인은 이전에도 본 적이 있다
그러니까 거의 10년 전 2016년 초연을 봤다는 소리다
10년 전이라니 믿기지가 않네
그때는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극을 올렸다
해오름극장이고 토월극장이고 전부 대학로랑은 동떨어진 곳인데
왜 그런 걸까
대학로에 대관할 극장이 모자란다더니 그래서 그런가

아무튼 오래간만에 찾아온 렛미인
사실 한번 더 올뻔했는데 코로나 여파로 한번 엎어졌었다
이번에 뭔가 사진이 상당히 가까운게
같이 공연을 보러 간 친구가 티켓을 잡아줬는데 오피 1열 중앙으로 잡아줬다
그래서 정말 볼 수 있는 한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극을 관람할 수 있었다
목이 부러지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인물들이 전부 앞으로 나와서 장면을 진행하는 게 아니다보니
꽤 편하게 관람했다
다만 한 장면 안에서 서로 다른 인물들의 행동을 보여준다든지
단체로 안무를 할 때에는 전체적으로 보고 싶은 느낌도 있어서
그 때에는 살짝 아쉬웠다
하지만 오피 1열
아쉽다고 말하는 것조차 사치이다
일라이 역 배우가 사냥을 할 때나 하칸이 칼로 목을 그을 때
검붉은 피 분장이 뚝뚝 떨어지는데 그걸 초근거리에서 볼 수 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다
나아가 일라이 역 배우의 인간에서 동떨어진 표정 연기가 대단해서
보는 순간마다 감탄했다

렛미인은 다시 봐도 참 아름다운 극이었다
자작나무 숲에 흰 눈이 깔려 있는 바닥이 쓸쓸한 느낌을 준다
거기다 주인공 오스카는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이 고립된 소년으로
엄마는 알콜중독에 아빠는 이혼해서 집을 나갔고,
학교에서는 조니와 미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옆집으로 이사온 일라이를 만나지만
일라이 역시 어딘가 이상한 아이였다
초반부터 나오는 사실인데
일라이는 꽤 오랫동안 하칸이라는 노인과 함께 살았다
하칸은 일라이를 사랑하고, 인간의 피를 먹는 일라이를 위해
피를 구해다주려 노력한다
그러나 차츰 늙어가는 몸으로는 쉽지 않다
처음 일라이를 만났을 때에는 젊고 힘도 세서 피를 잘 구해다줬겠지만
이제는 그렇지 못하다
일라이와 오스카는 서로 비밀을 가진 채 만나서
금방 서로에게 빠져든다
서로가 인격적으로 마음에 들었다든지, 외견이 화려했다든지 그런 이유가 아니다
특히 일라이는 피를 먹고 사는 존재이지만
미디어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를테면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톰 크루즈처럼 매력적인 모습을 띠지 않는다
머리는 산발이고, 맨발에 더러운 옷을 입고 있으며 썩은 고기 냄새를 풍긴다
그럼에도 둘이 서로에게 약속을 하고 의지하기 시작한 건
외롭기 때문이다
하칸이 더이상 일라이를 안전하게 만들지 못할 때
오스카의 부모가, 선생님이 더이상 오스카를 보호하지 못할 때
그럴 때 둘은 서로 아는 신호로 함께한다
이전 초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는
오스카가 일라이의 조언에 따라
자신을 못살게 구는 행동대장 조니에게 반항했는데,
그때 실수로 어깨가 아닌 머리를 때려서 조니가 기절했을 때
급하게 달려온 체육 선생에게 외친 대사였다
선생님 저 도와주실 수 있었잖아요!
그말 그대로 체육 선생은 오스카를 챙겨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스카를 괴롭히는 조니나 미키로부터 오스카를 보호해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방관한 쪽에 가깝다
오스카는 소심한 성격을 가져서 남에게 싫은 소리나 아쉬운 소리를 잘 못 한다
체육 선생에게도 격려를 받으면 고맙다고 말하고 선뜻 도와달라 하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면에서는 어른이 자신을 도와주기를 바랐을 거라 생각한다
누군가 도와줬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이번 재연에서도 정말 인상깊은 장면이었는데
이번에는 사건이 있고 나서 오스카가 일라이의 집에 놀러갔을 때가
더 기억에 남았다
사건이 일어나자 오스카네 집으로 전화가 걸려온다
오스카의 엄마는 오스카에게 사정을 들으려 하기보다도 신세한탄이 먼저인 사람이다
술을 마시고, 오스카가 위에 적은 것을 지적하자 오스카의 뺨을 때린다
한편 집을 나온 오스카가 별거 중인 아빠를 찾아간다
아빠는 오스카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지만, 오스카와 함께 살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오스카의 아빠는 이미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기에
갑작스레 찾아온 오스카가 거추장스러울 뿐이고 오스카도 그것을 느낀다
이후 다른 사건이 일어나고,
오스카는 일라이의 집에 가서 함께 춤을 추며 조니를 때린 일을 고백한다
일라이는 그래서 마음이 안 좋은가 묻고,
오스카가 그렇다고 하자 '나보다 낫네.' 하며 오스카를 격려한다
돌이켜 보면 오스카의 마음을 물어봐준 것은 일라이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스카가 더욱 외롭고, 이입이 잘 되어서 슬픈 장면이었다

그래서 이번 렛미인
콜라보 메뉴가 있다
총 3종류

1. 빙수
"First Winter"
첫만남의 설렘을 표현한 콜라보 메뉴라고 한다
우유빙수에 라즈베리와 블랙베리 퓨레를 부어서 먹는다

...................................................
맛은
우유빙수는 달콤하고, 퓨레는 새콤하다
라즈베리와 블랙베리가 얹혀있는데 젤리라서 놀랐다
그런데 맛은 맛이고 비주얼이 상당히 놀라운데
렛미인을 즐겼다면 꼭 먹어보기를 추천하는 메뉴이다
오피 1열에서 직관한 입장에서 말하건대
공연에서 쓰는 피 분장이랑 진짜 똑같이 생겼다

2. 바나나
"Let me Sweet"
작중 오스카와 일라이가 나누어 먹은 바나나 젤리를 표현한 듯하다
그런데 진짜 바나나처럼 생겨서 놀랐다
실제로는 누가바 껍데기를 두껍게 만든 디저트이고, 안에 생크림 비슷한 게 들었다
하얀 공은 약간 쫀득한 아이스크림
그 밑에 크럼블
이건 왜 있는 걸까? 했는데
함께 보러 간 친구 어머니가 하얀 건 눈이고, 크럼블은 모래 아니냐고 말해주셔서 깨달았다
극중에서 혼자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오스카를
조니와 미키가 괴롭히면서 놀이터의 모래를 먹으라고 강요하는 장면이 있다
맛은 좋았는데 조금 우울해졌다
이 우울함마저 렛미인같다

3. 건강주스
"Deep Red"
등장인물 간의 애틋한 감정을 진한 뿌리채소 주스로 담아낸...

건강해지고 싶나?
이걸 먹어라.
맛까지 건강한 뿌리채소즙이다.
약 10년 만에 다시 보니 정말 감회가 새로웠는데, 한번 보니까 또 보고 싶었다
좀 더 뒤쪽에서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다른 친구와 다른 날 같이 보기로 했다!
이 날과는 다른 일라이와 오스카 캐스팅이다
그런데 그날 보는 오스카 역할 배우가 10년 전에 렛미인 초연에서 오스카 역을 맡았던 배우였고,
나도 그 배우를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어쩐지 특별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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