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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뮤지컬 스톤

by 원더인사이드 2022. 3. 26.






오랜만에 뮤지컬을 봤다

뮤지컬 하면 역시 노래다
연극이란 텍스트가 좋아야 하듯
뮤지컬이란 노래가 좋아야 빛을 발한다

스톤은 노래가 신나서 좋았다
에버랜드에서 더블락스핀을 타면 나올 법한 노래들이 나와서 재미있었다

들으면서 닮은 분위기를 가진 노래가 몇 곡 떠올랐는데
우선
호레이스 실버의
Permit me to introduce you to yourself
Wipe away the evil
둘 다 70년대 노래다

극 자체도 노골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70년대 배경이라 당시 노래들을 참고한건가 싶었다

70년대라 생각한 이유는 우선
사이먼 코스모 마이클 세 등장인물 중
사이먼과 코스모는 KGB 소속 스파이였고
마이클은 CIA 소속 말단 요원이라는
설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비에트와 미국의 대립이니 우선 냉전 시기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냉전이 대강 50년도부터 40년 간 이어졌는데
이 중 70년을 집어낸 이유는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마이클이 '롱아일랜드 엘비스'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엘비스 프레슬리를 가리키는 것일테고
실제로 엘비스는 1973년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공연한 적이 있다
그런 락앤롤의 제왕이 77년에 가버릴 줄 누가 알았겠느냐마는...


어쨌거나 70년도라는 디테일에 이토록 열을 올린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음악 중 70년도에 발매된 음반이 꽤 되기 때문이다
세기의 명반 듀크 조던의 Flight to Denmark (1973)
스투 골드버그의 Fancy Glance (1979)
호레이스 실버의 That Healin Feelin (1970)
넥타(Nektar)의 Sounds Like This (1973)
프레미아타 포르네리아 마르코니의 Per un amico (1972)

등등... 써놓고 나니까 정말 많다
프레미아타는 Photos of Ghosts 앨범도 들어봐야 하는데
깜빡 잊고 있었네




음악 이야기는 이만하고 내용을 이야기해보자면
한 편의 에세이같았다

살다 보면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이렇게 하루하루 시간만 보내고 사는 건 의미도 없고
아주 열정을 쏟아서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차라리 지금 당장 죽어도 정말 상관없겠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는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사회 현상에 가깝다

그리고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여 18년도~19년도에 걸쳐 현재까지 꾸준히
'쉬어가도 돼' '괜찮아' '너무 힘내지 않아도 돼' 등
위안을 주는 메세지가 담긴 에세이들이 많이 발간되었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열 권은 된다
특히나 디즈니 혹은 카카오 캐릭터를 쓴 책들이 떠오른다
그놈들을 리커버해서 낸 책들도 떠오르고...
개인적으로는 이 리커버라는 것이 아주 유행하는 데
깊은 빡침을 느끼는 바이다
인기가 조금만 있으면 예스 버전, 교보 버전, 출판사 버전
리커버를 마구 찍어내는데 그야말로 환경 파괴 돈 낭비 아닌가 싶다

또 딴 길로 샐 뻔 했군

어쨌거나 위와 같은 에세이 주제를 담은 뮤지컬이 바로
스톤 이었다


이하 스포일러 줄거리 있음

현자의 돌을 찾아오라는 임무를 받아
미국으로 건너온 사이먼은
돌을 찾아 소련으로 돌아갈 때까지
자신을 경호하라는 임무를 맡은 코스모와 함께
볼티모어 항구에서 대기한다
그리고 마침내 여태 거짓 정보로 모은 가짜 돌들이 아니라
진짜 현자의 돌을 손에 넣는다

이 가짜 돌들이 무대의 찬장 안에 들어있는데
전부 코스모를 시킨 건지 코스모가 고생이 심해보였다
사이먼이 좋아하는 도넛과 커피도 전부 코스모가 사다준다
도넛을 사러 가서는 도넛을 고르면서 사이먼을 생각한다
정말 될성부른 셔틀이 아닐 수 없다

다시 현자의 돌로 돌아가자면
어쩌다 두 사람은 현자의 돌을 마이클에게 들켜버리고
일이 꼬이기 시작하는데...


중요한 것은 사이먼이 그다지
소련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한다는 점이다
그의 가족은 할아버지 대부터 사상범으로 낙인이 찍혀서
스스로 KGB 내에 몸담은 동안 가치를 증명하라는 소리를
골백번은 더 들었다
미국에서 그는 외국인이지만
소련에 돌아가면 더욱 애매한 취급을 받는다
그러니 임무를 완수해도 훈장 하나 받고 끝이다

어디를 가도 이방인인 신세라 선택을 유보한 결과가
바로 가짜 돌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코스모는 가짜 주워오느라 고생 깨나 했겠지...

그러고보니 무수한 가짜 돌들을 보며
미스터 노바디 (영화)가 떠올랐다
천사의 실수로 미래를 잊지 못하게 된 주인공 니모가
여러 가능성을 살아가며 최고의 해피엔딩을 찾는 내용이다
...만, 두 줄로 요약하기에는 좀 방대하다
정말 재미있으니 꼭 보기를 바람



그리고 극의 초반
진짜 돌을 찾은 지금 사이먼은 선택을 유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소련에 연락하여 배를 구하고
배가 올 때까지 마이클을 따돌리는 작업을
코스모와 더불어 해내지만... 그다지 간절하지는 않다
왜냐? 위에서 언급했듯
사이먼은 돌아가나 돌아가지 않으나 이방인이고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 삶에 지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을 가지고 소련을 향하는 배에 오른
마지막 순간까지 크게 기뻐하거나 안도하지 않는다

차라리 돌 같은 건 잊어버리고
자유로운 삶을 살면 좋지 않을까 싶지만
극에서도 현실에서도
그런 선택은 쉽지 않은 법이다...

그런데

혼자서는 자유를 선택할 수 없는 사이먼을 대신해서
어느덧 '성장'한 코스모가
(어떻게 성장했는지도 다 적고 싶지만
그러려면 정말 중간 얘기를 다 해야 한다)
대신 돌을 바다에 던져버린다
복귀 보류 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다시 볼티모어로 돌아가
마이클과 좋은 세 친구로 합류한다

이 장면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사이먼과 달리 코스모는 군관의 아들이라
소련에서 이방인 취급 당할 일도 없고
그야말로 탄탄대로였을 게 뻔한데
얼마나 사이먼과의 유대를 소중히 했으면
다 던지고 함께 이방인이 되는 선택을 했을까?
진실로 웅장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하여
항구를 떠돌겠지만 외롭지는 않을 사이먼이
참 흐뭇했다
참고로 마이클 역시 CIA를 때려쳤다
언더커버가 되고 싶어서 들어간 건데
말단 서류 작성 일만 시키고
코스모와 사이먼과 지내다보니
이쪽이 더 재미있고 심장 뛰는 일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셋 다 자유로워졌으니
셋이서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


마이클 얘기를 너무 안 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가장 보기 좋았던 역할이 마이클이었다ㅋㅋㅋ

마이클은 신나는 노래 불러주면서
주크박스 노래도 불러주고
번쩍거리는 의상도 입어주고요
재미있는 사람이다

꼭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를
불러주었으면 좋겠다
이것도 71년도 노래다...


시간을 쪼개서 보러 갔는데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인의 정서에 좋은 공연이었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구간이 있어서 찍었다

엄청난 카메라들을 가져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는 그냥 갤럭시로 대충 한 컷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