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GV에서 데이비드 린치 작품전에 이어 개최한 빔 벤더스 작품전
파트 1에는 '파리, 텍사스'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이 세상 끝까지' 그리고 '미국인 친구'를 상영해준다
이 중 굉장히 호평받는 영화가 '파리, 텍사스'인데, 일정이 맞아 이것부터 보게 되었다
감상은... 우선 재미있었다
영화가 크게 두 파트로 나뉘는 느낌인데
첫 파트는 동생 월터가 4년 전 실종되었던 형 트래비스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부분
두 번째 파트는 트래비스가 헌터를 데리고 실종된 아내 제인을 찾아가는 부분이다
첫 파트에서 트래비스는 대뜸 동생에게 파리에 가본 적이 있느냐 묻는다
월터는 가본 적 없다 하고, 트래비스는 자신이 이야기하는 파리가
프랑스의 수도 파리가 아닌 그들이 사는 미국의 텍사스 주 안의 파리라는 지역임을 알려준다
그곳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었고, 자신이 그곳에서 잉태되었을지 모른다며 그곳의 땅을 샀다 이야기한다
뒤이어 트래비스는 저희 아버지가 어머니에 대해서 했던 농담 이야기를 꺼낸다
형제의 어머니는 파리, 텍사스 출신인데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아내를 소개할 때
파리 출신이라 말했고, 사람들이 아내를 프랑스인이라 여길 즈음 뒤늦게 텍사스 출신임을 알리는 장난을 반복하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월터네 집에 도착한 트래비스는
월터 부부가 돌보고 있던 자신의 아이 헌터와 재회한다
처음은 서먹했던 둘이지만, 곧 친한 사이로 거듭난다
이후 트래비스는 사라진 아내 제인을 찾아나서기로 하고,
돈과 카드를 월터에게 빌려 아들 헌터와 함께 길을 떠난다
두 번째 파트 역시 그렇지만, 첫 번째 파트에서 마음에 와닿았던 부분은 바로 가족 간의 감정이었다
월터는 4년 전 갑자기 사라진 형 트래비스의 아이인 헌터를 아내와 함께 제 자식처럼 사랑하고 키워왔다
월터도 그렇지만, 월터의 아내는 헌터를 정말로 사랑해서 트래비스가 헌터를 데려가 버릴까봐 걱정하기까지 한다
동화에 흔히 나오는 '새엄마' 라든지 '의붓엄마' 와는 천지 차이다
또한 월터는 트래비스에게 4년 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두어 번 정도 물어보는데,
트래비스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보다도 월터에게 아내를 찾으러 갈테니 돈과 카드를 빌려달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월터는 무어라 따지는 대신 즉시 알았다고 대답한다
만약 월터가 가족이 아닌 남이었다면
4년간 제 자식을 버려두고 텍사스 어드매를 헤매다 돌아와 아무 해명도 하지 않는 트래비스에게
순순히 돈과 카드를 빌려주었을까?
하다못해 절친한 친구 사이에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짧게 지나가는 대화였지만 그곳에서 가족간의 신뢰라는 것을 느꼈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에는 그리 나쁜 영화가 아니었다
중간 중간에 소소하게 웃긴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던 월터가 형에게 운전을 맡기고 잠깐 잠들었더니
사막 한가운데서 깨어나 분통을 터트리는 장면이라든가
나아가 인물들이 다니는 곳을 기가 막히는 풍경으로 잡아 주는데 눈이 즐거웠다
또 헌터가 귀엽다
하지만 크게 마음에 와닿는 영화도 아니었다
사실, 사람들이 입 모아 칭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때까지도 궁금했다
그런데 아내 제인을 찾아가는 두 번째 파트에서 깨달았다
트래비스는 월터의 아내로부터 제인이 매달 헌터 앞으로 돈을 보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다른 정보들을 얻어 헌터와 함께 제인을 찾아가지만
제인은 손님이 여자를 볼 수 있고, 여자는 손님을 볼 수 없는 유리벽으로 나뉜 방 안에서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어느 풍속업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트래비스는 헌터를 차에 놔두고 혼자 업소로 가서 아내를 방 안의 전화로 불러낸다
그리고는 정체를 숨긴 채 배신감과 원망을 쏟아내다 떠나버린다
술을 마시고 곯아떨어진 트래비스는 잠들기 전 헌터에게 파리, 텍사스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내용이 월터에게 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아버지는 당신의 아내가 파리 출신이라 말하기를 즐겼고
어느 순간부터 정말로 프랑스 파리 출신이라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에 몹시 당황하셨다고...
다음 날 트래비스는 헌터를 호텔에 맡겨두고
혼자서 제인을 다시 찾아간다
이때 트래비스는 제인에게 '어떤 남자의 이야기'라며
자신과 제인이 헤어지게 된 이야기를 하고, 제인은 곧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트래비스임을 깨닫는다
트래비스와 제인은 서로 사랑했다
그런데 트래비스는 제인을 너무 사랑해서 집에 오래 있고 싶었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않았다
이에 제인이 걱정했는데 여기서 트래비스가 제인이 바람을 피우는 게 아닌가 오해를 하기 시작했다
제인이 아무리 부인해도 믿지 않았다
이후 아이 헌터가 태어났다
이를 계기로 트래비스는 마음을 고쳐먹고 잘 살아보자 결심한다
안정적인 일자리도 구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려 한다
그런데 이미 트래비스에게 시달릴 대로 시달렸던 제인은 트래비스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고
실제로 도망을 간 적도 있었다
어느 밤 트래비스는 도망치던 제인을 붙잡아 오븐 옆에 묶어놓고 잠을 잔다
깨어나보니 집은 불길에 휩싸여 있었고 트래비스는 아내와 아이를 찾지만 둘 다 사라지고 없었다
이후 트래비스는 4년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떠돌아다니다
파리, 텍사스까지 흘러가게 되었다
결국 영화의 제목이 파리, 텍사스인 이유는 트래비스가 제 아버지와 같은 과오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파리, 텍사스의 어머니를 보지 않고 당신 상상 속 파리, 프랑스의 어머니를 진실로 믿었듯
트래비스 역시 자신을 사랑하는 제인을 보지 않고 상상 속 바람을 피우는 제인을 진실로 믿었다
다시 제인을 찾아간 트래비스로 돌아가자면
둘은 업장의 조명을 끄고 유리벽 너머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한다
끔찍한 사건이 있었지만, 트래비스와 제인은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했지만, 과거를 없던 일로 묻을 수는 없었다
트래비스는 제인에게 당신과 헌터를 갈라놓은 건 나의 잘못이라며 헌터가 있는 호텔을 알려준다
당신도 같이 가자는 제인에게는 "제인 난 당신을 볼 수 없어" 한마디로 대꾸하고,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후 제인과 헌터는 다시 만나서 포옹을 나눈다
그리고 트래비스는 호텔 창에 비치는 둘의 실루엣을 보고 떠나간다
다른 부분도 좋았지만 마지막 선택이 엔딩을 장식하는 영화였다
가족의 인연은 소중하고 끈끈하지만,
또 마냥 낙관적으로 밀어붙이지는 않는 느낌
여담으로 헌터가 친구에게 트래비스를 가리키며 자신의 아빠라고 말할 때
친구가 '아빠가 어떻게 둘이야' 라고 묻는 장면이 있다
(헌터는 4살 때 월터네 집에 가서 자랐기에 월터를 아빠라 부르며 살아왔다)
그때 헌터가 몰라, 운이 좋은가 보지. 라고 대답하는데
삶을 저렇게 살아야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황스러웠던 건
앞사람 머리에 스크린 아래쪽이 약간 가렸다
그렇게 앉은 키가 큰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는데... 대학로 지점 단차 문제인가

다음
영화가 끝나고 횡단보도를 건너서 공연을 보러 갔다
뮤지컬 스톤
친구가 같이 보자고 해서 봤는데... 과연

결과는 오늘의 운세 대성공이었다
그러니까 굉장히 재미있었다는 말이다
스페셜 커튼콜 주간이라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찍었다

어느 정도로 재미있었냐면...
더 이상 이 뮤지컬을 보지 않아도 좋겠다 싶을만큼 재미있었다

자기 실현적 예언이라는 게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예언의 구조인데
신화에서 두려운 신탁을 받은 인간, 혹은 신은 그 예언을 피하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쓴다
예를 들어 그 유명한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 왕은
'네 아들이 너를 죽일 것이다' 라는 예언을 피하기 위해 오이디푸스를 내다버렸다
또한 오이디푸스 역시 '너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다'라는 예언을 피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방랑했으나 외길에서 만난 아버지를 우발적으로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버려졌기 때문에 아버지가 아버지인 줄 몰랐고 어머니가 어머니인 줄 몰랐다
라이오스는 예언을 피하려 오이디푸스를 버렸지만
결국은 그때문에 오이디푸스에게 죽고 아내를 빼앗긴 것이다
이 개념을 적는 이유는...
이날 이 공연을 보면서 자기 실현적 예언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딱히 예언이 등장하는 공연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이 스스로 자신의 목을 조른 것을 깨닫고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아 내가 여기에서 죽어야겠다' 여기는 듯한 장면이 있었다
각본에서 의도한 장면은 아니기에
앞으로 이 공연에서 이러한 장면을 볼 날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의외였고, 즐거웠다

이런 날
공연은 조금 늦게 끝났지만, 그럼에도 친구와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미제 혈당식 가보자고
이날 함께 보자고 해준 친구에게 무한히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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