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후의 유혹>
서문이 비범하다
누군가는 읽어온 책들의 도입부 중
가장 인상 깊은 도입부라 손꼽은 적이 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는
첫째로 같은 작가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이 책이 한때 금서로 지정된 바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신성모독을 했기에 금서로까지 지정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예수에 대한 해석이었다
사실 성경이든 어디든 예수가 등장할 경우 으레
침착하고 위엄있고 소위 목자로서 행동하며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십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최후의 유혹 1에 등장한 예수는 딱히 그런 목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예수의 해석만큼이나 충격적인 것이 바로 유다의 해석이다
이 책에서 이스카리옷 유다는 욕심 많고 교활한 배반자가 아니라
과격하고 뚝심 있는 실천가, 누구보다 기적을 믿고 싶어하는 독립주의자로 묘사된다
그는 메시아의 이미지를 머리 속에 가지고 있으면서 메시아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그리하여 찾아온 메시아가 로마로부터 유대인들을 해방하기를 바란다
위의 이미지에서 유다가 예수를 찾아온 것 역시
곧 십자가형에 매달릴 사람을 구해내러 가자 제안하기 위함이다

아직 예수가 신앙의 길을 걷기 전의 이야기
그야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갈릴래아 사람들이라든지 다른 지방 사람이라든지
로마인을 제외하면 다들 하느님을 믿기는 하나
아직 예수가 신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길을 걷기 전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자꾸 환청이나 환영을 보니까 사람들은 예수가 정신병에 걸린 줄 안다
그래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아들을 굉장히 한심스럽게 여기며 괴로워한다

그런데 한 문단만 지나면 뭔가 각성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드러나는 모습이 참 변덕스럽다

변덕이라고 하니
예수의 다른 제자 중 하나 베드로도 등장한다
베드로에 대해서도 쓸 말이 많은데 아마 <최후의 유혹 2>에서
더 많이 쓰지 않을까 싶다
우선 베드로의 특징 중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만 적어둔다
1. 베드로는 무수한 과오를 저지른다
2. 베드로는 저지른 과오를 깨닫고 수치스러워하며 회개한다

아마 이 심연에 대해서 파고든 사람이
도스토예프스키였을텐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끝맺지 못하고 죽어버려서
할 수만 있다면 부활시키고 싶은 심정이다

카잔차키스 특징: 굉장히 소박한 음식도 굉장히 충만하고 맛있어 보이게 씀

뜨끔
생각해보면 베드로의 특징이기도 하다
다른 제자들보다도 베드로는 허풍선이같은 말을 자주 하고
예수가 그를 지적한 적도 있다


최후의 유혹에서 유다가 독립주의자 파에 속해있다 언급한 적이 있다
어째서인지 자세히 기억은 안 나는데
독립주의자 지파의 동지들이 예수가 죽기를 바라서
유다는 예수를 죽이러 왔다
그런데 예수는 저항하는 대신 그래 날 죽여라 한다

대장장이=유다
카잔차키스는 이렇듯 인물을 그 인물의 성격이나 직업, 또는 다른 특성으로 지칭하는 경우가 잦다
아무튼 유다는 예수를 죽이지 못한다
그는 정말로 신 앞에 신실하고 메시아를 바라는데,
그 메시아가 유대인을 해방시키리라 믿으며
유대인의 해방이야말로 그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비범하다. 이 사람의 정체는 무엇인가?
호기심과 의심으로 유다는 예수를 죽이지 못한다

그 유명한 돌던지기 장면

유다가 예수를 처치하지 않자
같은 지파의 바라빠가 와서 예수를 죽이려 한다

예수는 예수인 것이고
마리아는 참 불쌍하다
이것도 성경에서는 이렇게 불쌍하게 그려지지 않았던 듯한데
카잔차키스가 출정하는 남자 뒤에 남겨지는 여자의 슬픔을 꼭 짚어주는 편이다

이것 또한 유명한 장면
어부 베드로와 안드레를 제자로 들여 전도의 길에 오르는 대목이다
흔히 '사람을 낚는 어부'로 알려져 있는데 원문은 '사람의 어부'에 가깝다고 한다
<최후의 유혹 1>에서 정말 좋아하는 장면인데,
고기를 낚는 두 어부를 보던 예수가
어떤 환희에 가까운 예지를 보는 묘사가 정말 뛰어나기 때문이다
비단 카잔차키스의 책뿐만 아니라
뛰어난 구절들을 보면 도대체 어떻게 이런 글을 썼을까 감탄하게 된다

<최후의 유혹 1>의 마지막 장면은 악마와의 대전
성경에는 예수가 제자들을 남겨두고 홀로 사막에서 악마와 맞서는 장면이 나온다
광야의 유혹 혹은 세 가지 시험으로 잘 알려진 대목이다
책에서도 예수는 분명히 악마와 맞서지만, 성경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성경에서는 악마가 예수를 유혹하고 예수는 그를 말 한마디로 물리친다
그러나 <최후의 유혹>에서는 예수가 자신의 마음 속으로 잠겨 들어가 싸움이 시작한다
즉 악마도 유혹도 자신의 마음 안에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1권을 읽을 즈음 한창 유행하던 영화 <콘클라베>를 시청했는데,
그곳에서도 비슷한 대목이 나왔었다
차기 교황을 뽑는 와중 바깥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고 추기경들 역시 이 소식을 알게 된다
청렴결백하며 신실한 보수파의 수장 테데스코는 이에 분기탱천하며
저들 즉 폭력적인 불신자들, 이교도들과의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 설파한다
이때 영화 내내 조용히 좌파와 우파의 암투를 지켜보고 있던 추기경,
유일하게 중동에서 온 추기경 베니테스가 나아가 모두를 꾸짖는다
그는 전쟁이 무엇인지는 아느냐 묻고, 전쟁을 한다면 누구와 싸울 것이냐 물은 후
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며 자기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는다
<최후의 유혹>에 등장하는 예수와 참 비슷한 셈이다
여담으로 광야에서 예수는 40일을 보내며 유혹에 맞섰는데,
숫자 40은 이탈리아어로 quaranta 라고 부른다
그리고 여기서 한창 코로나가 유행했을 적 따라다녔던 단어 격리(quarantine)가 파생되었다고 한다
2권 후기는 여건이 될 때 또 쓰도록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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